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기 전 저는 공황장애로 인하여 자신감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저는 여고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이 수업에 방해될까봐 두 시간마다 한 번씩 화장실에 꼭 가곤 했는데, 고3 시절 스트레스로 인하여 방광염에 걸린 이후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때마다 저에게 쏠리는 시선들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살았었는지를... 그 때문에 과민성 방광이라는 후유증을 안게 되었고 어딜 가든 화장실이 없으면 괜시리 불안해지고 신경이 예민해 진다고나 할까요.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 시점부터 밝고 친구도 많았던 제가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것을 조금씩 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문제 하나로 많이 힘들어서 그 기억만 지우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하여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정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분께 최면치료도 받아보고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도 잠깐 받았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스스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여름방학에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붙어 다녔던 친구와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 터졌습니다. 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일일이 챙겨줘야 하고 친구가 아니라 남자친구처럼 챙겨 줘야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해외여행이니 서로 배려하며 사이좋게 다녀오자고 하였으나 저에게 짐을 맡기는 등 스트레스만 계속 안겨주었고 결국 밤에 숙소에서 자려고 누워있다가 숨이 안 쉬어지고 심장이 너무빨리 뛰어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새벽에 영국에 있는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공황발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필 그 날이 벨기에로 이동을 해야 하는 날이어서 더 이상 여행을 진행할 수 없었고 그렇게 친구와 둘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첫 해외여행을 그렇게 허무하게 망치고 돌아와서 친구 여행비 물어주느라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공황발작증세로 인해 호흡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다 침 삼킴, 눈 깜빡임 등등 자율신경계가 알아서 도맡아 하는 것마저 신경이 쓰여서 집밖으로 나가기도 싫었습니다. 집에 누워서 핸드폰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문제는 또 터졌습니다. 어떤 글을 읽게 되었는데 틱장애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틱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이 조금 힘들지만 응원해 달라는 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며 읽었으나 그 사람이 쓴 글 중에 한 문장이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은 틱으로 인하여 칼을 자신의 눈에 갖다 대다가 멈추고 가스레인지 불 앞에 손을 갖다 댄 적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후 며칠 뒤 저는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미친 듯이 불안해졌습니다.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가 박혀버린 것입니다. 그 글에서 읽었던 장면이 상상되면서 나도 그 사람처럼 칼을 갖다 대면 어떡하나 나도 모르게 집밖으로 뛰어내린다거나 칼로 나를 혹은 남을 해친다거나 하면 어떡하나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니 모든 날카로운 물체들과 높은 곳, 아니 그냥 모든 것이 다 무서워져서 더더욱 집밖을 못나가게 되었습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파고들어가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런 것들까지 의문점으로 다가오고 사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신경정신과를 찾았으나 의사의 진단은 불안장애라면서 그저 약을 하나 처방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으니 몸이 나른해지고 움직이는게 더 힘들어지더군요..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몇날 몇일 울고만 있는 제가 안타까웠는지 어머니는 최면치료를 한 번 더 받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최면치료를 다시 한 번 받았었는데 저의 문제를 빙의적인 관점에서 다루시는 겁니다. 초등학생 때 혹시 친했던 사람이 죽지 않았냐고...그리고 영국에서도 영국 귀신이 씌인 것 같다며 혹시 영어가 나오면 영어로 말을 해보라고 하시는 등 제가 알던 최면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최면 후에도 나아진 것이 없는 채로 하루하루 버티다시피 살았습니다. 그 이후 지인의 추천을 받아 신경정신과이지만 심리상담을 위주로 하는 곳에도 가서 3개월 정도 상담을 받았으나 여느 상담센터가 그렇듯 무기한이어서 항상 가서 저는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피드백을 듣고 이것이 반복되니까 상담에도 많이 지쳐있었고 기대치도 완전히 떨어져서 그만두었습니다. 심장 두근거림과 순간적으로 불안해지는 신체적인 증상들이라도 막기 위해 한방 신경정신과에서 한약도 먹어보았습니다. 신체적인 증상은 조금 나아진 듯 하였으나 저의 근본적인 문제는 생각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고 자꾸 떠오르는 잔인한 생각들 때문에 괴로운 건 여전하였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어느날 친한 친구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상담받을 곳이라며 저에게도 추천을 해주어서 화인난치심리클리닉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유명한 센터들은 서울에 있을 것이라는 제 생각과 달리 제가 살고 있는 부천 신중동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실력도 뛰어나신 분이라고 하여서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상담을 결심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부담도 되었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셔서 걱정이 되었지만 그보다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화인 난치심리클리닉은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우선 상담시작과 동시에 체계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심리검사를 하였는데 여태까지 다녀봤던 상담센터들과는 달라서 믿음이 조금 생겼습니다. 또한 무기한으로 상담을 지속해야 하는 부담없이 기간을 정하고 상담을 진행하시는 것도 차주현 선생님께서 상담에 자신이 있으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치료를 진행하면서 계속 놀란 것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술심리치료, 영상치료, 가족상담치료, 성상담치료, 그리고 집단상담까지...
이 모든 치료의 효과를 제가 느낀대로 말해보자면 우선 미술심리치료를 통해 제 자신에 대해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저라는 주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신적으로 이렇게 힘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억압적인 부모님 때문이었는데 그 속에서 저는 착한아이 컴플렉스 마냥 해야 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지어 놓고서 항상 착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타인에게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욕먹지 않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남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다가 결국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미술치료를 통해 제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되었고 그 이후에 부모님과 독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서 제 공간이 없었는데 차주현 선생님의 조언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려 제 방을 만든 것이지요. 그리고 영상치료는 차주현 선생님이 저에게 필요한 영상들을 보여주시면서 제가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좀 더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족상담치료는 부모님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와 저 단 둘이 남게 되면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가족이 함께 포옹해 보고 서로 못다 한 얘기들도 하게 되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상담 이후에 아버지가 저를 이해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하시고 자기 전에 항상 포옹해주시고 이런 변화들이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이라 행복합니다. 그리고 제가 성상담치료를 받게 된 이유는 부모님이 굉장히 보수적이시고 억압적이셨고, 학창시절 제대로 된 성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로 인하여 수치심과 두려움이 결부되어 저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상담을 통해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굳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상담을 받고 난 지금 확실히 하길 잘했다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억압적이었던 것이 깨어지고 수치심과 그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도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브레인 집단상담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에 집단상담 제의를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습니다. 다른 정신적으로 힘든 문제를 지닌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쳐야하고 그런 것들이 꺼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물론 힘들어서 상담을 받는 것이겠지만 제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단상담을 2회 받은 후, 오히려 타인의 모습을 통해 이렇게 힘든 제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 말고도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구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나만 이런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도 나아질 수 있구나 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잘 표출할 수 없는 감정들도 그냥 느껴지는 대로 다 표출해버리니 마음에 쌓여있던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치료받으면서 화장실 때문에 불안한 것도 많이 나아져서 화장실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고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민성 방광 증상도 사라졌고 수치심을 없애는 작업을 통해 사람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확실히 줄어서 살기가 좀 더 편해졌습니다. 차주현 선생님께서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주셨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제가 두려움에 조금 더 직면하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 자신감 있게 살아나가는 것 뿐입니다. 이제 인생 뭐 있나 될대로 되라고 열심히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직업적성검사를 통해 제 미래의 진로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주셔서 그런 점도 되게 좋았습니다.
앞으로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세우고 이루어나가려고 노력하며 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