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선택되어지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나는 상담을 받기 전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의 판단에 나의 자존감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판단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밑바닥을 기며 살아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내면을 다시 건설해가기로 마음을 먹고 상담을 시작하였다. 상담 첫째 날, 짧은 한 시간이지만 나의 삶 전체를 바꿀만한 문장 하나를 듣게 되었다. ‘선택되어지는 것이 내가 아닌, 나의 선택에 따라 사는 것’
이 문장은 지난 20년 가까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들을 걷어버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난 지금까지 사람들의 말과 판단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것에 맞추어 살았다. 왜냐하면 타인들의 판단을 나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최00’의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고 당연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판단을 받아왔던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로써의 자아를 당당하게 세워갈 수 있었던 귀하고 값진 시간이였다. Part 2. 첫 번째 공동체를 회복해 가는 것
나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 왜냐하면 같은 집안에서 살지만 난 지금까지 부모님의 큰 도움 없이 혼자서 잘 해왔다고 생각했고, 내가 독립한다고 해서 집안에 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정서적으로 잘 독립한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맘 깊숙한 곳에는 부모님과의 관계의 문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해 독립을 하고자 하는 부정적 동기가 강했음을 보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께 여러 불만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이 아들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아들로써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가족안에서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음으로 건강한 독립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중심의 대화법을 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드림으로써 두 분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다시 관계를 맺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무너져 있었던 나의 첫 번째 가족 공동체를 세워나감으로써 나를 튼튼히 세워가려고 한다. Part 3. Treasure map.
첫 번째 상담 이후에 외부환경과 나를 분리시켜 보게 되는 힘을 기르게 되면서 상담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원하는 것을 써보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들을 계획해보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의 막연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계획들을 짜보기 보다는 평상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써내려가면서 꿈, 목표, 삶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정하기로 하였다. 평상시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면서 지도자, 공동체(동역자들), 안정적인 삶(독립), 등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가운데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꿈들을 이뤄나가기 위한 다음 스텝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Part 4. 집단상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5시간의 집단상담 시간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던 값진 시간이였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난 주말을 반납해가면서 상담을 하는 것에서 짜증이 났고 상담시간 5시간이 매우 길고 힘든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상담에 임했었던거 같다. 처음에는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지내왔던 사회와는 다른 작은 사회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억지로 웃고, 울고, 욕하고, 춤추는 행동을 하면서 전혀 규칙이 없었다. 그러나 규칙에 얽매였던 쳇바퀴 같았던 나의 삶에서 규칙에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왕따를 겪게 되면서 지금까지 나는 못난 사람이라고 인식하면서 살아왔는데, 같이 상담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시기를 버텨냄으로써 내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고, 나에게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나눠줄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과거의 상처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면서 나는 그 시간에 빠져들게 되었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맨 마지막에는 주변의 눈치와 규칙에 얽매여 쳇바퀴같은 삶을 사는 나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 시간에는 차주현 대표님이 나의 과거를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나를 압박함으로써 매우 힘들었다.
대표님의 의도는 알고 있었다. 원장님이 막고 있는 문을 열고 나가 밖에서 센터를 바라보라는 것이였다. 하지만 정말 그 의도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부터 시작해서 남들을 따라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나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러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고, 원장님과의 잠깐의 실랑이 끝에 밖에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밖에 나와 사거리에서 내가 5시간 넘게 있었던 센터를 바라보았는데, 다른 간판들에 묻혀서 집중하지 않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다른 여러 선택지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집에 가도 되고, EDIYA에서 커피를 시켜도 되고, 옆에 홈플러스에서 장을 봐도 됐었다. 그렇게 나의 삶에는 여러 선택의 기회들이 있고 나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마음의 시야는 넓어지고 자유함을 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거 같다.
Part 5. 새로운 경험.
첫 번째 상담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의 삶은 환경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이 많았는데, 그 중에 한 가지는 기독교였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때부터 믿어왔기 때문에 매우 신실했고 종교 이전에 신념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서 기독교를 때어낸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삶들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큰 일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억눌려오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번 상담을 통해 잠시 기독교를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은 자유함이였다. 나는 여태껏 하나님을 생각하면 구속, 죄, 무서움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에만 초 점이 맞춰짐으로써 내가 나약하다는 인식밖에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내가 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장님과의 상담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변질된 기독교에 대해서 듣게 되면서, 목사님께 조언을 구하게 되었는데, 원래 하나님(기독교)은 구속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자유함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라는 말을 해주셨다.
한국교회는 구속과 죄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 나의 삶에서 봐야할 것은 죄사함 이후의 자유함이라는 조언을 통해 기독교 안에서의 나의 모습을 다시 재구성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기독교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여태까지 외면해왔던 분야들을 접해보는 것과 억눌려왔었던 육체적 욕구들을 경험한 것이였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분야들을 접해보지 않았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나의 공간과 영역들을 모두 교회안에 속해있었고 그 생활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이나 분야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체 살아왔었다. 이러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난 그 이유도 모른 체 공감대형성에 에너지를 쏟고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삶에서 육체적 욕구는 활발한 편이였다. 성욕, 식욕, 수면욕 등의 욕구등이 있었지만 난 그러한 육체적 욕구들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것을 따르는 것은 매우 불순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러다 보니 육체의 욕구와 이성적인 판단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적절한 욕구해소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매번 이러한 고민가운데서 죄책감에 빠져 나의 자존감을 한없이 낮아지게 하였고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해결방법이 시급했다.
이러한 상태를 가지고 상담을 하면서 하나둘씩 나의 생각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기독교 영역에서의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고 내가 원했던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육체적 욕구에 관해서는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결코 잘못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이러한 욕구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인식을 알고 가지게 되면서 단순히 이성적 발달이 전부라고 알고 있었던 나에게 더 넓은 시각으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전까지는 불순해보였던 육체적인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욕구들을 해소할 때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적욕구 해소 과정에서 나의 남성성 또한 재확인 할 수 있었던 색다른 경험의 시간이였다.
이전까지는 나는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남성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여성들처럼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감정적인 부분이 더 크게 발달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성관계의 과정에서 나의 남성역할을 확인함으로써 나 자신에 대한 역할과 모습들에 대해 생각하고 알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